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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원 작가의 『우리는 왜 쉬지 못하는가』를 읽으며, 나는 잠시 시계를 내려놓고 숨을 골라야 했다. 책의 제목처럼, 나는 왜 쉬지 못했던 것일까? 한국 사회에서 '쉼'이라는 단어는 마치 금기처럼 여겨진다. 잠시라도 멈추면 뒤처질 것 같은 불안, 쉬는 것이 게으름과 동의어처럼 여겨지는 사회적 분위기, 그리고 끊임없이 우리를 소비의 굴레로 몰아넣는 자본주의의 속성이 우리의 '쉼'을 빼앗아가고 있음을 이 책은 예리하게 지적한다.
저자는 현대인이 쉬지 못하는 근본적인 원인으로 신자유주의 체제의 경쟁 구조와 불안을 지목한다. '잘 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우리는 더 불안해진다는 역설. 이것이 책의 첫 번째 장에서 던지는 질문이다. 생각해보면 나 역시 '더 나은 삶'을 위해 쉼 없이 달려왔지만, 과연 그 결과로 얻은 것은 무엇인가? 물질적 풍요로움일지 모르나, 내면의 풍요로움은 오히려 빈곤해진 것은 아닐까?
특히 인상 깊었던 부분은 소비 문화가 우리의 여가와 쉼을 어떻게 장악하고 있는지를 분석한 대목이다. 휴식조차 소비의 대상이 되어 '웰니스' 산업으로 포장되고, SNS에 인증할 만한 화려한 여행이나 활동으로 변질되는 현상. 순수한 의미의 쉼, 그저 존재하기 위한 쉼은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저자의 표현대로 "소비가 삶의 주요한 리듬인 사회"에서 진정한 쉼을 찾기란 쉽지 않다.
책을 읽으며 존 러복의 명언이 떠올랐다. "휴식은 게으름이 아니다. 그것은 회복의 시작이다." 이 책에서도 저자는 쉼을 단순한 무위(無爲)의 상태가 아닌, 적극적인 행위로 재정의한다. "나는 쉰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라는 문장은 마치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를 뒤집은 듯한 선언이다. 그만큼 현대 사회에서 쉼의 가치가 재평가되어야 함을 역설하는 것이리라.
또한 저자는 쉼의 회복을 단순히 개인적인 차원의 문제로 한정짓지 않고, 사회 구조적인 측면에서 접근한다. 빼앗긴 쉼을 되찾기 위해서는 사회적 상상력이 필요하다는 주장. '공생공락(共生共樂)'의 개념을 통해 함께 살고 함께 즐거워하는 삶, 진정한 공동체적 가치를 회복해야 한다는 메시지는 깊은 울림을 준다.
내가 가장 공감했던 부분은 자기결정권과 자기존엄성에 관한 논의였다. 저자는 "자기결정권이 자기존엄성이다"라고 말한다. 내 삶의 리듬과 속도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인간은 존엄성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리듬이 아닌, 사회가 강요하는 속도에 맞춰 살아가고 있는가? 밤늦게까지 이어지는 업무, 쉴 새 없이 울리는 업무용 메신저, 주말마저 빼앗아가는 일. 이 모든 것이 우리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하고 있다.
책을 읽고 나서, 나는 내 일상에서 진정한 쉼의 순간들을 되돌아보았다. 아침에 일어나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창밖을 바라보는 시간, 퇴근길에 공원에 잠시 들러 벤치에 앉아 생각에 잠기는 순간, 주말 아침 늦잠을 자고 아무 계획 없이 보내는 하루. 이런 소소한 시간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리고 얼마나 자주 이런 시간들을 허락하지 않았는지 깨달았다.
저자가 말하는 '새로운 리듬의 변주'와 '정지 운동'의 개념은 우리에게 일종의 저항을 제안한다. 쉼 없이 돌아가는 자본주의 시스템에 작은 균열을 내는 것, 때로는 의도적으로 멈추는 용기를 갖는 것. 이런 작은 실천들이 모여 사회 전체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희망을 품게 한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저자는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으로 '거리로 나간 수많은 바틀비'의 모습을 그린다. 멜빌의 소설 <필경사 바틀비>에서 주인공이 말했던 "하고 싶지 않습니다(I would prefer not to)"라는 문장은 무조건적인 순응을 거부하는 조용한 저항의 상징이다. 우리 또한 무조건적인 생산과 소비의 압박에 "하고 싶지 않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이 책을 통해 나는 '쉼'이 단순한 휴식이 아닌, 우리를 자유롭고 존엄하게 하는 가치임을 깨달았다. 오늘날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부, 더 높은 지위가 아니라 인간다운 삶의 리듬을 되찾는 것일지도 모른다. 일상에서 작은 쉼표를 찾고, 그 안에서 진정한 나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
『우리는 왜 쉬지 못하는가』는 단순히 개인의 삶의 방식을 성찰하게 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우리 사회 전체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인문학적 상상력을 제시한다. 나 자신을 위한 쉼을, 그리고 우리 모두를 위한 쉼을 찾아가는 여정에 이 책이 귀중한 안내서가 될 것이라 믿는다. 소소한 일상 속에서도 쉼의 가치를 발견하고, 존재 그 자체로 충분함을 느끼는 삶. 그것이 이 책이 우리에게 일깨워주는 가장 큰 메시지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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